'영화감독'에 해당되는 글 1건
- 2008/04/03 EBS '한국영화특선' 신상옥 감독 추모전 (8)
EBS '한국영화특선' 신상옥 감독 추모전
姑신상옥 감독 2주기 맞아 한 달 간 신 감독 작품 편성
<삼일천하> (4.6) / <만종> (4.13)
<다정불심> (4.20) / <천년호>(4.27>
방송 : 4월 6 ~ 4. 27 매주 일요일 밤 11시 25분 ~
담 당 : 글로벌팀 김성숙 PD (526-2563)
4월 11일은 신상옥 감독이 타계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EBS ‘한국영화특선’은 故신상옥 감독 2주기를 맞아 ‘신상옥 감독 추모전’을 준비했다. ‘삼일천하’, ‘만종’, ‘다정불심’, ‘천년호’ 4개의 신상옥 감독 작품을 특별 편성했다.
1952년 <악야>로 데뷔한 이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로맨스 빠빠>(1960) 등으로 그 입지를 확고히 해가던 신상옥 감독은 홍성기 감독과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성춘향>(1961)의 성공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1961), <폭군연산>, <열녀문>, <로맨스 그레이>(1962), <쌀>(1963), <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1964)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표작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 시기이다. EBS '한국영화특선‘에서 4월 한 달 간 선보이는 네 편의 작품은 이런 전성기를 거친 후, 신상옥과 신필름이 새로운 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던 1967년부터 73년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그런 만큼 신상옥 감독의 다양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
네 작품 중 <다정불심>(1967)은 신상옥의 60년대를 잘 보여주는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개봉 후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던 작품인데, 이후로도 신필름의 앞날이 밝지는 않았다. <천년호>(1969)는 이런 어려운 제작 현실에서 새로운 모색을 한 대표적인 작품. 1960년작 <백사부인>에서도 호러와 판타지를 시도했던 신 감독은 이 작품에서 특수효과를 사용한 새로운 장르 개척을 추진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이었던 이 시도는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시체스환상공포영화제에서 황금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두 작품은 신상옥 감독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여성욕망에 대한 과감한 묘사를 잘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언어(청각)장애인 부부의 삶을 다룬 <만종>(1970) 역시 독특한 소재로 영화 영역을 개척하려 했던 작품이다. ‘유신영화법’이라 불리던 4차 영화법 공포와 함께 개봉한 <삼일천하>(1973)는 그러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찬란했던 60년대의 기백을 잃지 않으려는 힘이 들어간 역사물. <연산군> 연작과 <대원군>, <내시>(1968), <이조여인 잔혹사>(1969) 등에서 볼 수 있던 신상옥식의 화려하고 힘찬 궁중사극의 기운을 잃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이 네 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신상옥이라는 거장의 다양한 면모를 찾아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신상옥 감독 약력>
1926년 함경북도 청진 출생. 1944년 일본 동경미술전문학교 수학. 해방 후 고려영화협회 미술부에 들어가 영화 포스터와 세트 제작을 하는 한편 <자유만세> 스텝으로 참여하여 최인규 감독 밑에서 영화를 익혔다.
<코리아>(1954)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최은희를 주로 주연으로 기용하여 <꿈>(1954),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1961)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특히 <성춘향>(1961)은 홍성기 감독 김지미 주연의<춘향전>과의 경쟁에서 승리는 신상옥에게 기업적 기반을 조성해주었고, 이는 ‘신필름’의 창립으로 이어진다. 신필름은 한국 최초로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춘 영화사로 300여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한편 78년 최은희와 함께 납북되어 북한에서 <탈출기>, <소금>(1985)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북한에서 탈출 후 할리우드에서 <닌자 키드> 시리즈물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94년에는 칸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국내로 영구 귀국 후에는 ‘안양 신필름 영화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매진하다 2006년에 4월에 별세했다.
============================================================
<삼일천하> 2008년 4월 6일 일요일 밤 11시25분
감독/ 신상옥
출연/신영균, 신성일, 윤정희, 박노식, 남궁원, 도금봉
제작/1973년
영화길이/ 140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조선 말엽 1884년 11월, 왕궁에서는 청국과 결탁하고 있던 보수세력 민씨 일가와 일본측의 입장에 기울어 있던 개혁세력이 왕권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개혁세력의 일원인 김옥균(신영균)은 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독립을 선포할 것을 왕(신성일)에게 간언하고 왕도 이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다. 김옥균 세력들은 우정국 창립기념일에 기회를 잡고 정치적 실권을 잡는다. 그러나 보수파의 첩자가 이 사실을 은밀히 청에 알리고, 청의 원세개는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다. 3일 만에 꿈이 무산되어버린 김옥균 일파는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지만 일본인들은 당초의 협상과는 달리 그들이 쓸모없어지자 국외로 추방하려 한다. 조선에서는 명성황후(도금봉) 세력이 김옥균파의 잔재를 제거하려 하고, 결국 옥균의 부인(윤정희)과 딸은 노비로 신분이 강등된다. 옥균은 명성황후 일파에 매수된 부하의 총에 맞아 타지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친다.
주제
한때 영화사 신필름을 근대적인 기업 체계로 완성하려 했던 만큼, 신상옥 감독에게 ‘근대화’는 중요한 화두였다.
<쌀>이나 <상록수> 같은 영화들은 근대화에 대한 감독 본인의 전망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 역시 사극의 형태를 빌어 근대화에 대한 열망을 잘 표출하고 있다. 개화파 김옥균은 실존인물이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김옥균은 그보다 오히려 1970년대형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화의 파트너로서 택하게 되는 일본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이 작품에서 보이는 서로 다른 일본인 캐릭터들에서 잘 나타난다. 이것은 1884년 갑신정변 전후의 모습을 빌어 1965년 한일협정 이후의 한-일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신영균의 입을 빌어 역설하는 ‘근대화’의 의지는 김옥균의 것이기 이전에 1973년을 살던 사람들의 것으로 보인다.
감상포인트
스케일이 큰 역사영화를 연출하면서도 자기 색채를 잃지 않았던 신상옥 감독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옥균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군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운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궁녀 혁명가 ‘고대수’이다. “백금녀 이후의 기대주”로 불리던 여자 코미디언 오천평이 맡은 이 역할은 빈궁한 계급 출신의 궁녀가 혁명가로 성장하여 몸을 사르는 영웅적 일대기를 보여준다.
============================================================
<만종> 2008년 4월 13일 일요일 밤 11시25분
감독/ 신상옥
출연/최은희, 김진규, 신성일, 김창숙, 최불암
제작/1970년
영화길이/ 118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언어장애인인 그들은 맞선으로 만나 곧 결혼을 결심한다. 남편(김진규)은 목공으로 아내(최은희)는 재봉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생긴다. 부부는 더욱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아이는 조금씩 커간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친구들로부터 부모가 ‘벙어리’라며 놀림을 받고 괴로워하지만 슬기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장성한 아들 용식(신성일)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에 부부는 몹시 기뻐한다. 하지만 용식의 애인인 미아(김창숙)은 용식의 부모가 모두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혼란스러워한다. 더구나 말썽만 일으키던 외삼촌(최불암)은 언어장애인 딸을 둔 어느 사장 집에 용식을 선보이려 한다. 외삼촌은 미아의 오빠에게 용식의 사정을 알리고, 의사인 미아 오빠는 그들을 떼어놓으려 든다. 미아와의 결별에 괴로워하던 용식이 집을 나간 사이, 어머니는 길에서 미아를 우연히 만난 직후 갑작스레 달려든 차에 치어 세상을 뜬다. 갑작스레 어머니를 잃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용식 앞에 미아와 그 오빠가 나타나고, 용식과 미아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주제
언어(청각)장애인 부부와 비장애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한국영화사에서 얼마 안 되는 본격 장애인 영화이다.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차별과 그로 인한 고통과 인내를 비장애인 아들의 사랑 이야기 속에 결합시켰다. 작품 후반 최은희의 갑작스런 교통사고사로 인해 갈등이 모두 해소되는 과정은 ‘어머니’ 역할의 여성장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또한 용식과 미아가 결별하게 했던 가장 큰 문제인 장애 유전 가능성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면서 갈등이 해소되는 부분 역시 장애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아쉬움을 준다. 그러나 작품에 나오는 대사의 거의 절반가량을 수화로 채운 과감함이나 언어장애인의 일상을 묘사하는 세밀함에서 어떤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감상포인트
최은희와 김진규라는 걸출한 톱스타들이 오로지 수화와 표정연기만으로 극을 끌어가는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지금도 낯익은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한데, 제5회 백마상에서 이 작품으로 신인배우상을 받은 김창숙의 풋풋한 매력이 도드라진다. 최불암은 신상옥 감독의 <마적>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인상적인 악역을 선보이니 지금의 후덕한 이미지와 비교해볼 만하다.
============================================================
<다정불심> 2008년 4월 20일 일요일 밤 11시25분
감독/ 신상옥
출연/최은희, 김진규, 박노식, 최성호, 한은진
제작/ 1969년
영화길이/ 98분
나이등급/ 19세
줄거리
고려의 왕손 전(顓)(김진규)은 원나라에서 노국공주(최은희)와 혼인, 미술에 심취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누린다. 하지만 원나라에 의해 충정왕이 폐위되면서 전은 공민왕으로 추대되어 고려로 귀환한다. 고려로 온 공민왕은 개혁정치를 펼치며 원나라로부터 잃었던 영토를 되찾고 고려를 자주국가로 만든다. 노국공주는 자신을 ‘고려인’으로 생각해달라며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그러나 노국공주는 아이를 낳다 운명을 달리한다. 공민왕은 슬픔에 잠겨 국사의 전권을 신돈에게 맡긴다. 공민왕은 신돈이 불러온 노국공주의 혼령과 운우지정을 나누지만, 후에 노국공주가 아니라 반야라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다. 공민왕은 노국공주를 잊지 못해 영전을 건립하고 영전벽화를 그리는 데에 온 힘을 쏟다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주제
이 작품은 공민왕이 원나라 배척정책을 통해 자주국가로서 고려를 일으킨 것과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공민왕의 개혁 정책이 그의 능력뿐 아니라 노국공주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성공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노국공주는 공민왕의 정치적 파트너로 국사의 영역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하며 공민왕의 적들을 견제하고 자주정책들을 견인한다. 따라서 노국공주의 죽음은 공민왕의 개인적 슬픔의 차원을 떠나 그의 정치적 능력 자체의 훼손인 것이다. 영화는 노국공주를 대담한 정치가로 묘사함으로써, 당차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사극 속에서 새로이 창조해내고 있다.
감상포인트
최은희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노국공주와 반야라는 상반되는 두 캐릭터를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노국공주의 선 굵은 외모와 당당한 풍모는 공민왕의 정치적 파트너로서의 풍모를 우아하면서도 힘 있게 재현해내는 한편, 한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성 반야가 광인으로 변해가는 모습 역시도 입체적이다. 공민왕 역의 김진규는 권력욕보다는 예술 세계에 심취한 감상적 인물로 묘사되며 최은희의 강한 캐릭터와 상반된 면모를 보여준다. 공민왕이 완성한, 스크린을 꽉 메우는 노국공주의 아름다운 영정 벽화는 놓치지 말아야 할 백미이다. 컬러 시네마스코프의 화면 위에 펼쳐지는 이국적 풍광과 화려한 세트․의상들은 60년대 절정에 달했던 영화사 신필름의 전성기를 엿보게 한다. 대종상 6회 미술상을 받았다.
============================================================
<천년호> 2008년 4월 27일 일요일 밤 11시25분
감독/ 신상옥
출연/신영균, 김지수, 김혜정, 강계식
제작/ 1969년
영화길이/ 88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도적떼를 물리치고 돌아온 김원랑(신영균)은 진성여왕(김혜정)이 베푼 축하연에 참여한다. 그날 밤 여왕은 그를 유혹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원랑의 부인 여화(김지수)를 도성 밖으로 쫓아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숲 속을 지나던 여화는 산적을 만나 도망치던 끝에 연못으로 뛰어든다. 원랑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달려와 연못에서 여화를 건져내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몸에는 온기가 남아 있다. 여화는 한밤중에 잠이 깨 귀신에 홀린 듯 집을 나서 산적들을 유혹해 살해하고 여왕의 처소에도 침입해 죽이려 한다. 여화에게 천년호의 혼이 깃든 것을 안 원랑은 그녀를 절에 기거케 하고, 여왕은 여화가 있는 절에 불을 지르도록 한다. 결국 여화는 원랑의 칼에 맞아 죽고 만다. 원랑은 눈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화의 무덤을 지킨다. 세월이 흐른 후 무덤을 찾은 노승은 앉은 채로 해골이 된 김원랑을 발견한다.
주제
신라 마지막 왕인 진성여왕이 연루된 일종의 삼각관계의 파국을 보여주는 판타지 영화다. 천 명의 사람을 잡아먹어야만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천년호는 여화의 몸을 빌려 원을 푸는 대가로 여화의 목숨을 살려준다. 여화의 몸을 빌린 천년호나 진성여왕은 모두 여성의 강한 욕망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다. 호걸인 원랑이 그 사이에서 왜소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여성 캐릭터들에게 깊고 입체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신상옥 감독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감상포인트
제3회 시체스환상공포영화제에서 황금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기본적인 설정은 호러영화의 관습적 장치를 따르고 있지만, 공포 보다는 특수효과를 통한 시각적 즐거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재주를 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천년호의 모습이나 연못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물기둥 등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이었을 기술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신상옥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내용을 읽어 보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
글 : 네이버 : changpau님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확립한 영화계의 큰 스승/ 신상옥
80세를 상회해도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는 60년대 3거장 중 한 명인 천재 감독 신상옥은 분단이후 남․북에서 최초로 영화연출을 시도하고 그 실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였다.
민족수난사의 同脈 선상에서 영화수난사의 아픔을 몸소 체험한 그의 업적을 기려 2001년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기영, 유현목 회고전에 이은 그의 회고전은 우리영화의 전통미학과 시대상을 조망하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견과 원로 감독들 상당수가 그의 조련을 받았고 그는 한국영화계의 큰 스승으로 우뚝 서 있다.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천력은 한국 영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사극과 문예물들은 한국영화 만이 가질 수 있는 역사성과 시대성을 반영하였다.
일본의 동경제국대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에게 영화를 배워 광복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최인규 감독의 사회 변혁에 따른 적응력을 배워온 그로서는 한국영화를 세우는 섯가레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굳건한 각오가 있었다.
그의 주옥같은 영화들은 1953년 최은희라는 부동의 스타와 결혼, 호흡을 같이함으로써 작품성을 드높인다. 쉽게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은 많은 사극 영화 속에서 휴머니즘을 주창하고, 뒤틀린 사회에 대한 조소와 변혁을 시도하면서 관객을 계몽하는 훈장 역을 자임했다.
당시 영세하던 영화 시장을 기업화하는 계기가 된 1966년의 신 필름 설립은 한국영화의 소재 개발과 다양한 영화창출의 본거지가 된 점에서 의의가 있었고, 이형표,이장호,박철수 같은 영화감독들이 감독으로 세공 된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신감독은 1925년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여 경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한 한 해외파 감독이었다. 제작자, 감독, 촬영기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952년 『악야,惡夜』로 감독 데뷔, 올해로 꼭 50년 감독생활을 하고있다.
전쟁중 생활비․제작비에 시달리며 공군촬영대 소속 신상옥은 이색작가 金光州 원작의 양공주를 다룬『악야』로 ꡐ현실은 추악하다ꡑ는 것을 고발한다. 데뷔작의 문제제기는 이후 그의 작품들에서도 계속 제기되는 문제점들과 상통된다. 그는 늘 깨어 있으면서 시대의 타락․예술성의 상실․피박받는 국민들을 안타까워했다.
미국에서 흥행영화를 만들었고, 일본에 있으면 그는 영원한 팬들이 생겼다. 북한에서 그의 작품들이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가하면, 깐느영화제에선 심사위원을 맡았다. 부천에서도 심사위원장을 맡고 부산에서는 그의 회고전을 마련했다. 그는 살아있는 신화가 된 것이다.
말년에 분당에 둥지를 튼 그는 박세리와 같은 골퍼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나 일본만화가 주는 깜찍함이 배어있는 영화들을 구성하고 있었다. 아직도 합작으로 영화재정을 타개하고 싶은 그는 『징기스칸』과 같은 우리민족의 원류를 찿아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미 미국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모범을 제시한 그는 아직도 해외시장은 넓고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행동으로 역설하고 있다.
살아있는 映畵史인 그의 10년간 초기작들은 『악야』,『코리아,1954』,『꿈,1955』,『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6』,『지옥화,1958』,『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8』,『춘희
,1959』,『동심초,1959』,『자매의 화원,1959』,『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로맨스 빠빠,1960』,『이 생명 다하도록,1960』,『백자부인,1960』,『성춘향,1961』(22회 베니스영화제에 출품),『상록수,
1961』,『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제23회 베니스영화제에 출품) ,『연산군,1961』,『폭군연산,1962』,『열녀문,1962』,『빨간마후라,1964』등으로 그의 작품성향이 역사의식과 서정적 문예물에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의 추악과 과거의 허망으로 표현되는 6편의 작품을 지나 『어느 여대생의 고백』이나 『성춘향』은 신필름의 기업화에 용기를 준 작품이다.
초기 작품들로 영화적 실험을 마친 그는 본격적으로 자기만의 영화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전형적인 공식을 만들어 내게 된다. 수용의 모티브, 페미니즘적 이미지등 자기만의 해석을 바탕으로한 기반 위에 남자 주인공들은 형이상학적 미의식이나 이상을 상실해야하고, 여주인공들은 불가항력적인 숙명에 희생당해야 한다.
그러나 변증법적 사고는 이 원형질을 언제나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고 단지 보관할 뿐이었다. 신감독은 한국영화 50주년이 되는 1969년까지『배비장,1965』,『청일전쟁과 여걸민비,1965』,『내시,1965』와 같은 시대극을 꾸준히 만들었다. 영화 쇠퇴기인 1970년대에 들어와 검열과 영화관객의 급감으로 더욱 우울해진 신감독은 『궁녀,1972』,『삼일천하,1973』,『13세 소년,1974』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60년대의 화려함을 뒤집지는 못하였다. 특히 그가 1978년 납북되어 87년 탈출할 때까지 북한에서 만든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탈출기,1984』, 『소금,1985』,『사랑 사랑 내사랑,1985』, 『심청전,1985』,『방파제,1985』,『불가사리,1985』7편의 영화는 한국영화 통사의 귀중한 자료이다.
탈북후에도 『마유미,1990』,『증발,1994』등으로 우리에게 건재함을 알렸던 신감독의 수상경력은 화려함 그 자체이다.『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제1회 대종상 감독상,『벙어리삼룡,1964』으로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빨간 마후라』로 제11회 아시아 영화제 감독상,『돌아오지 않은 밀사』로 카르로비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소금』으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게하는등 그의 능력은 전세계에 알려져 있다. 신상옥의 대표작들은 재평가되고 있으며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찿아가는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신감독의 영화제작 시스템은 노련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문된 파이를 들고 오듯 이미 그 성향들을 다 알고 있었다. 신필름의 노하우는 신속하게 팀웍이 운영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사불란하게 남편 쪽은 스텝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부인 쪽은 속전속결로 캐스트들을 지휘할 수 있는 투톱이 되었던 것이다. 부인 최은희는 신상옥표 영화의 전속 배우였다. 그들은 처절하게 영화작업에 미쳐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호흡은 작품의 완성도와 빠른 촬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그리던 영화세상 영토피아는 현실에는 없는 것이다. 그 답은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데뷔작 『악야』의 상황은 아직도 전개되고 있고, 단지 화려한 영화 이면이 아름답게 21세기형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원로이지만 아직도 건재한 신감독의 건강비결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흥위원회등은 제작지원을 통해 원로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없고 장자꾼만 판치는 영화세상은 아무래도 삭막할 수밖에 없다. 파란을 겪으면서 영화작업을 해온 신감독이지만 아쉬운 점은 1)역사와 문학적 공통성을 앞세워 한국영화를 아시아 영화예술과 산업에 우뚝 세우지 못한 점 2)우회적인 표현으로 한국영화의 리얼리즘 전통을 확실히 세우지 못한 점 3)그의 작품에 다양한 여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출연, 실험하지 못한 점 4) 안정적 영화제작 방식으로 보다 심도 깊은 작가주의 전통을 세우지 못한 점등이다.
어려운 영화 환경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영화가 있게끔 한 산파역을 제대로 해낸 신감독의 불굴의 작가정신은 한국 영화를 고사위기에서 구해 내었다. 이제부터 신감독에 대한 연구와 지원으로 한국영화 역사를 새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모두 동참하기를 기대해 본다
'M > 방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봉준호 감독 "나도 무플에 상처 받았다" (8) | 2008/05/08 |
|---|---|
| 100살 된 빨강머리 앤, EBS에서 만나요 (10) | 2008/04/30 |
| EBS "극한 직업" 바다와 싸우는 대게잡이 어부들 (0) | 2008/04/14 |
| EBS '다큐 10' 영혼의 땅 티벳 (2) | 2008/04/11 |
| EBS‘명의’국민건강 프로젝트 - 한국인의 성인병 (4) | 2008/04/08 |
| EBS '한국영화특선' 신상옥 감독 추모전 (8) | 2008/04/03 |
| 차마고도란 무엇인가? (4) | 2008/03/20 |
| EBS『리얼실험 프로젝트 X』다랑도 TV 끄기 (0) | 2008/03/17 |
| EBS 프로그램 수상소식 - 제20회 한국PD대상 수상 소식 (2) | 2008/02/22 |
| MBC사장 엄기영앵커 내정 (0) | 2008/02/16 |
| <EBS 스페이스 공감> 2월 공연 안내 (2) | 2008/02/01 |





Prev
Rss 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