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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전시회가 마무리 된 시간이 한 달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시회 마지막 날 찾아뵙고, 레이소다의 장대군이라고 인사를 드리니 친절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만나뵙는 것이고, 온라인에서만 인사를 드려서 서먹함이 좀 있었지만...^^
서로의 인사를 건내고... 사진, 인화, 판매 등 사진에 대한 전반적인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최영진 사진집 - 서쪽바다 새만금
사실 사진전시회를 가서 보는 것과 인터넷이나 소규모의 사진으로 사진을 보는 것의 의미와 이야기의 전달력은
큰 차이를 나타냅니다. 전시가 열렸던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제5전시실의 공간에서 2m 이상되는
작품을 바라보면 넓은 바다도 그렇지만 사진에 빨려들어가는 압도감을 느낄 수 있고, 사진에 대한 힘을 느낄 수
있어서 제가 지금 소개 하는 사진을 보시면 별거 아니구나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무튼 지금 소개하는 사진들은 일반인이 구입하기 어려운 금액의 사진들이고, 제대로 감상하려면 사진으로부터
3m 이상 떨어져서 감상해야 할 정도로 큰 사진들입니다. ^^
아래는 사진전에 대한 소개를 옮긴 것이고, 그 다음은 전시회에서 담은 사진을 소개합니다.
<서쪽바다, 새만금>사진전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제5전시실
전시일시: 2008. 06. 02 ~ 06. 09
지난 2000년부터 서해안 갯벌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는 사진작가 최영진.
2004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변해가는 내부의 환경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했으며,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대형사진들(140x400cm & 200x150cm)을 담은 사진전시회이다.
"약간 탈색된 듯한, 중성적인 컬러색감이 슬쩍 어려 있고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장면들...
인간이 지닌 언어의 항목, 색채를 지시하는 문자의 그물로는 도저히 포착하기 어려운 색깔로 칠해진 이 풍경은
차갑고 서늘하며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런가하면 고요하고 차분하게 모든 것들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지상으로, 바닥으로 하염없이 몰려간다.
보는 이의 시선 역시 수평의 세계로 가라앉는다. 수직성의 세계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가장 원초적인 수평의 힘과
자연의 근원적인 질료성과 색채를 지닌 이 풍경 앞에 잠시 망연하다. 그의 사진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
장면을 대면하고 있다. 그 거리는 완충과 중간지대, 즉 사이의 공간으로 극단을 껴안으며 경계에서 살고 있는
갯벌을 통해 우리들 인간에게 그 경계의 삶과 완충의 필요성이나 그 의미에 대해 말해주는 바로 거리이다"
(서문 박영택)
사진가 최영진
아래는 사진가 최영진님의 <서쪽바다, 새만금> 사진집에 대한 소개입니다.
판형_270×380 || 면수_304 / 양장제본/ 사진_150여점 / 가격 60,000원
●실제, 새만금을 옮겨놓은 것처럼 현장의 생생함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
‘환경의 날’ 과 환경올림픽인 ‘2008람사총회’의 주체국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환경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때를 맞이하여 한층 더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사진작가 최영진씨가 지난 2004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촬영된 10만 컷 이상의 방대한 기록물 중에서 엄선한 사진작품150여점과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고철환 교수의 갯벌과 새만금 지역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 쉽게 풀어쓴 자료와 미술비평가 박영택 교수의 글수록. 이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신영복 선생의 “서쪽바다 새만금” 표지 calligraphy
이번 여름에는 어떤 바다를 보실 생각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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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piece 2008/07/09 09:56
일찍! 소개를 해 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저도 늦게 찾아뵜었구요..
저도 사진의 힘을 많이 느꼈던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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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2008/07/09 16:00
작년이었나 매 주 새만금으로 사진 촬영을 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나도 전시회엔 가보진 못하고 위에 소개된 책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우선 기록이라는 면에서도 대단하다는 느낌이었어.
일본. 동경. 사진. 거리. 풍경. 낯선곳. 시선. 느낌.
그의 사진속에 들어갈 낱말이다.
한 단어로 표현을 해도 좋고, 모든 단어를 집합하거나 교집합으로 이끌어 내도 좋다.
긴 호흡 한 번 쉬고 사진을 담는 과정과 그의 느낌을 전하기 위한 현상, 인화과정을 거친 사진들이
갤러리에 전시되고 사람들에게 보여졌다.
여러 번의 전시회 경력답게 능숙하게 잘 빠져있는 사진들과 그의 손에 이끌려 생명을 갖게된
필름의 변태가 이채롭다.
기간은 한정 되었지만 사진의 진정성에 걸맞게 그 내면의 공간과 시간은 멈추어 졌다.
오원주 개인전. 전시포스터
전시는 회사를 마치고 볼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전화를 걸어두고 7시가 조금 늦은 시간까지 열어달라
당부를 했었어요. 마침 사진을 절반정도 감상했을 때 오원주님이 오셨습니다.
레이소다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지만 저보다 사진전이나 경험이 더 많으신 분이라 사진의 느낌이 강렬함을
많이 느끼곤 했던 분이었습니다.
오원주님의 레이소다 갤러리 : http://www.raysoda.com/DummyFactory
사진을 두장 찍었는데 한 장은 오원주님을 찍어 드린 것...
2008. 사진가 오원주
또 한 장의 사진은 갤러리의 입구와 전시사진을 찍은 사진입니다...
2008. ArtBit Gallery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가서 바로 돌아오긴 했지만 사진전 만큼은 저에게 의미가 된 시간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Risa Ono - Take me home country 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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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군 monopiece 2008/03/07 17:04
허허...진작에 올렸어야 했는데..말이죠...
본의 아니게 죄송스럽네요...^^
홈페이지 가시면 그나마 작은사이즈이긴 하지만 사진을
보실 수 있을거에요...^^;
반갑습니다. 니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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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거 2008/03/07 17:23
저도 사진 전시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카메라 잡은지 이제 2둘여가 지났는데, 사진 감상이 이렇게 즐거울수가 없네요.
우와~ 주말이다~~~~~~~~ -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등은 죄가 되지 않고 나머지 혐의도 범죄증명에 해당되지 않음으로 무죄를 선고합니다.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사진가 이시우(40)씨 1심 선고공판에서 판사의 이같은 최종 판결에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부인 김은옥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명판결 이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시우 작가는 지난해 4월 19일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돼 48일간의 목숨을 건 감옥안 단식 끝에 보석으로 출소했으며, 지난 1월 10일 검찰은 이시우 작가에게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 압수물품 몰수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이시우 작가는 출소 후 지난해 11월 7일부터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국회앞 삼보일배에 뛰어든 이래 12월 3일 혼자서 다시 삼보일배로 임진각으로 향했고, 지난 21일 마침내 임진각에 도달했지만 그는 동쪽 고성을 향해 계속 ‘국가보안법에 대한 명상’을 진행하면서 걷기명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31일 오전 10시 10분경부터 서울형사지법 417호 법정에서 제27형사부 한양석 부장판사는 이시우 피고인에 대한 국가보안법상 △기밀 탐지.수집.누설 △찬양.고무.선전.동조 및 이적표현물 제작.소지.반포 △회합통신 외에도 △해군기지법위반, 군사시설보호법위반, 군용항공기지법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무죄를 판단했다.
숱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완전 무죄가 선고된 것은 드문 경우로 향후 국가보안법 혐의자에 대한 신중한 법적용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특히 한양석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국가보안법 1조 2항을 들어 “국가보안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그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한해석하여야 한다”고 전제했으며, 4조 1항 목적수행을 위한 기밀에 대해서도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 물건 또는 지식에 속하지 아니한 것(非公知性)이어야 하고, 또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적 가치를 갖춘 것(要秘匿性)이어야 한다”고 엄격한 적용기준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시우 작가의 공군 제19전투비행단 및 제15혼성비행단의 각 비행장 촬영의 경우 “현재 미국의 인터넷 업체인 구글에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구글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피고인이 촬영한 정도의 해상도를 갖춘 위 각 비행장 사진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각 비행장 사진들은 비공지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며, 또한 그가 이 공군기지들을 촬영할 당시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조사담당자였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판단했다.
핵무기와 화학무기와 관련된 대목에서는 “설령 피고인이 공개한 정보 중 국가보안법상 기밀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북한 등의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이를 공개하였다고는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해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한 엄격한 법적용의 전범을 보였다.
특히 캠프보니파스와 만리포 한미합동군사연습 관련 사진과 기사에 대해서는 “통일뉴스 기자의 자격으로 캠프 보니파스를 방문하였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통일뉴스 전문기자의 자격으로...”라고 명시해 검찰측의 이시우 작가가 기자를 사칭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일 한통련과 총련 관계자와의 접촉에 대해 검찰측이 통신.회합 혐의를 적용한 점에 대해서도 “피고인과 강춘근 등과의 만남이 의례적, 사교적 차원을 넘어서서 어떤 목적수행을 위한 일련의 활동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흔히 국가보안법 사범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렸던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대해서도 이시우 작가가 소지한 북한 원전 등이 “이적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이 있었고 그러한 목적으로 위 출판물들을 취득, 소지하였다고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로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시우 작가가 사진가로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통일뉴스 전문기자로서 연구.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점, 공공기관과 도서관에서 같은 책자의 열람.대출.등사를 허용하고 있는 점 등을 세세히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국가기밀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 △일부 국가기밀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 등 반국가단체를 지원할 목적을 엄격하게 해석 △이적표현물 소지자가 연구나 저술활동에 활용하는 등 이적목적이 아닌 경우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점 등을 꼽았다.
통일뉴스를 옮겼습니다.
관련기사의 링크주소입니다.
http://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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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10년형을 선고받은 사진가 이시우의 최후진술문
2008/01/31 14:35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글이나 링크를 부디 다른 곳으로 옮겨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저는 Raysoda의 '현린'님의 글을 옮겨왔고, '이노'라는 닉네임으로 http://raysoda.com/boa 의 계정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입니다. 도대체 이나라의 법은 못되고 우기고 힘있고 돈있는 자들만 편을 들어주는게 너무 못마땅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왜 약자들은 이렇게 소외당하고 매를 맞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저는 서른이 넘은 저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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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홀릭 2008/02/19 23:57
이시우씨드 드디어 무죄판결을 받았군요. 세상이 어느 때인데...아직도 이적이니 불온이니 하며 사상을 억압하다니. 우리나라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제 한나라당이 권력을 잡았으니 향후 5년 동안 국가보안법의 생명줄은 더욱 질겨지겠죠? 언제야 그 생명줄을 끊을 수 있을런지....
여튼 이시우씨가 무죄판결 받아서 다행이고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대군 monopiece 2008/02/20 00:12
그들의 마음이 언제까지 그럴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악법 때문에 피해를 당한 국민들이 미안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제가 당사자가 아님에도 너무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세상은 어제 바뀔지 알수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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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Raysoda의 '현린'님의 글을 옮겨왔고, '이노'라는 닉네임으로 http://raysoda.com/boa 의 계정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입니다. 도대체 이나라의 법은 못되고 우기고 힘있고 돈있는 자들만 편을 들어주는게
너무 못마땅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왜 약자들은 이렇게 소외당하고 매를 맞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저는 서른이 넘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국가보안법과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진가 이시우에 대한 1심 결심공판이 1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답니다. 사진가 이시우는 군사시설을 촬영해 이를 조총련에게 넘긴 혐의 등을 받고 있으며, 검찰은 이에,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압수물품(필름, 책외 모두) 몰수를 구형했다지요. 1심 선고재판은 1월 24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립니다. 아래는 이날 낭독되었다는 이시우의 최후진술문입니다. 굳이 일상란에 글을 옮기는 것은 이념을 떠나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사진가의 엄연한 일상이고 제 자신의 "자유로운 일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출처는 그의 홈페이지 http://www.siwoo.pe.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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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심공판에 참석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후진술문을 올립니다.
이시우 최후진술문
인사
한 선생님께서는 다른 판사가 입정할 때는 일부러 일어나지 않는데 유일하게 한양석판사님이 들어오실 때는 일어나서 예를 갖춘다고 하셨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컸던 분이 그럴 정도로 누가 봐도 공정한 재판을 진행해 주셨습니다. 변호사님에게나 검사님에게나 피고인인 저에게나 증인들에게까지도 치우침 없는 공평한 배려로 경청으로 재판을 이끌어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방대한 분량의 수사기록이란 말을 번번이 되뇌이실 정도로 과중한 재판준비를 해오시느라 수고하신 검사님께 또한 수고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법에도 양심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시고, 예의 변호사나 법조인이라면 가질 권위주의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인권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성심과 성의를 다해 무료 변론을 해주신 이정희변호사님을 비롯한 민변변호사님과 대인지뢰피해자들에 대한 애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배려로 혼신을 다해주신 김다섭 변호사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정중히 드립니다. 문정현신부님을 비롯 거의 빠지지 않고 재판에 참석해주시며 무언의 기둥이 되어주시고 역사를 엄숙히 기억할 사관이 되어 주신 방청객여러분들께도 성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보수단체의 어르신들이 열심히 참석해주시다가 저의 보석출소이후에는 단한명도 참석치 않으신 것입니다. 그분들은 복도에서 돈을 받고 동원된다 어쩐다 소리가 들렸지만 설령 돈을 받고 오셨어도 나름의 경험과 신념에 기초하여 이 자리를 하나의 역사의 장으로 생각하고 오셨던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신념을 돈으로 동원한 사람들이 잘못일 것입니다. 여러 어르신들과 서서히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익혀가며 대화하고 경청할 기회를 갖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소외
겨울의 언땅과 찬바람은 그저 피해다녀야 할 대상이었지만 저는 오랜동안 집을 나와 길 위에 서고서야 겨울의 언땅을, 허공의 찬바람을, 그들의 고독했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빛과 볕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관심과 무관하게 그늘진 땅 찬바람이 존재하듯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버려진 채 제 스스로 버티며 살아남고 있는가 다시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길위에서 삼보일배 명상을 하는 중에 무엇인가 번쩍이는게 있어 눈떠보니 라이터쪼가리였습니다. 문득 그것은 쓸모 없어져서 버려진 것인가? 아니면 버려져서 쓸모 없어진 것인가? 를 생각해봅니다. 한번 버려진 것이 본래의 것과 재결합하여 제구실을 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현실에서의 진정한 몰락과 실패는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파괴보다는 관용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졌습니다. 그러나 파괴보다 더 가혹한 것은 버려지는 것입니다. 버리는 자는 고의로 버릴 수도 있고 실수로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쓸모없어서 버려질수도 있지만 버려졌기 때문에 쓸모없어진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 무엇인가를 고의로나 실수로나 버린 적이 없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사회에서 국가보안법사범이 된다는 것은 버려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국가보안법으로 갇혀있는 이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많은 분들이 있는 한편, 당사자가 체포, 구속되고 언론으로, 입소문으로 알려지는 순간 세상의 대부분은 우리를 외면했습니다. 차가운 감옥방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 외면과 고립입니다. 술먹을 때는 형제를 자처하는 사람이 천명이나 되었는데 급한일을 당하고 나니 함께하는 벗이 단한명 없더라는 명심보감의 첫 문구가 감옥에 갇히는 순간 느끼게 되는 우리들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국가보안법을 코웃음치며 아직도 그런법이 남아 있었는가 하고 화답하던 이들에게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공포였습니다. 출소 후 재판을 위해 증인과 증거자료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가 무관심이 아니라 사실은 두려움임을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탁한 것조차 부담스러워 할 때 저는 더이상 부탁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증거자료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저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1년전 일심회조작사건이 터지자 저 또한 그들에게서 점쟎게 눈을 돌렸습니다. 시골에 산다는 것은 그런 편리함을 제공합니다. NK조선에 실린 선군정치선전화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최화섭,김맹규선생님을 잡아넣었을 때는 아직도 이런 짓을 하는 공안기관의 한심한 작태에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상대할 가치를 못느껴 역시 외면했습니다. 만약 그때 그분들이 저와 연관이 있어서 증거자료를 부탁해왔다면 저는 흔쾌히 응할 수 있었을까? 저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무관심이란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의 위장된 표현입니다. 연이어 터지는 국가보안법사건들에 무심한 사이 얼마지나지 않아 뜻밖에도 그 다음 순서는 저였습니다.
강화도로 이사하여 사람들과 정붙이고 살아온 지 여러 해가 되었고 국정원직원과도 식사를 하는 사이가 될 정도였지만 이번 사건으로 저는 간단히 간첩이시우가 되었습니다. 어떤분들에게 국가보안법구속은 곧 간첩으로 쉽게 단순화되었습니다. 설령 무죄 판결이 난다해도 이미 한번 간첩은 영원한 간첩으로 낙인찍히고 말 무서운 구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복잡한 과정을 설명할 기회가 인생에 과연 얼마나 될지 그런 순간이 찾아올 수나 있을지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의 이빨이 빠진지 오래여도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란 것을 제 자신과 우리의 태도는 입증해 주었습니다. 일심회조작사건과 저의 사건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저는 결론 내렸습니다. 그들이 감옥에 있어야 한다면 저 또한 감옥에 있어야 하며 제가 석방되어 있다면 그들 또한 석방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옥보다 더한 것이 출소 후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무관심과 외면이 확인될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어야할 사람들이 함께 있지 않다고 생각될 때 고립을 실감합니다. 고립과 그에 따르는 외로움은 공동체에 대한 갈망 때문인 것입니다. 출소 후 먼지 쌓인 작업실을 청소하다 오래된 화집하나를 꺼내들게 되었습니다. 그 화집 속의 그림하나가 바로 저의 그런 처지를 착잡할 정도로 정확히 담고 있었습니다.
그림: 일리야레핀의 아무도기다리지 않았다.
1884년부터 5년에 걸쳐 개작을 거듭한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이제 막 유형지에서 돌아온 한 젊은 혁명가를 가족들이 놀란 눈으로 맞이하는 장면의 그림입니다. 혁명가와 마주한 검은 옷의 어머니인 듯한 여인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을 듯 하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서 보이지 않는 얼굴 표정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가 방금까지 앉아 있었을 오래된 비로드천 쇼파의 질감은 낡은 전통과 안정감을 상징합니다. 책상에서 공부를 하다가 몸을 틀어 그를 본 남자아이에겐 기쁨으로 위장했으나 두려움과 불길함을 결국 숨기지 못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막내로 보이는 하얀 옷의 어린 소녀는 기억을 되살려 눈 앞의 '낯선 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그 불안함은 책상밑으로 모아진 발끝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피아노 앞의 여성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당황스러움으로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의 충돌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이들보다 먼저 그를 보았고, 거실문을 열어 아직 문고리에서 손을 내리는 것조차 잊고 있는 문간의 여인은 이제 그를 정면이 아닌 뒷면에서 볼 수 있다는 심리적인 거리 때문에 기쁜 척 해야 할 의무적인 표정대신 가장 여실히 그가 몰고올 불길한 예감을 직감하고 있는 먹먹한 표정으로 목석처럼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긴장된 순간을 초래한 주인공인 혁명가는 기쁨과 반가움, 두려움과 공포가 뒤섞인 감당하기 힘든 가족들의 시선을 받으며 반가움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지만 그들의 시선에 섞인 두려움을 이내 직감하고 더이상은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균형을 잡지 못한 모습이, 영영 그렇게 멈춰 버렸을 것 같이 서 있습니다. 그의 모자를 든 한손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러하듯 가슴 근처로 가 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어 내려뜨린 채 몸에 붙이고 있는 다른 한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의 교착된 감정 상태를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빛과 내딛은 한발은 반가운 감정을 동력으로 하고 있지만 손의 표정과 내딛지 못하고 있는 한발은 가족들의 시선에서 확인한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불행과 불길함의 화신으로 만든 가장 잔인한 장치는 햇빛입니다. 모든 가족들의 얼굴과 마루바닥과 심지어 벽지에까지 은은하게 깃들어 있는 안정과 행복, 질서와 조화의 빛은 17세기 네덜란드화가인 페르메르가 이룩한 전통의 완벽한 소화입니다. 그러나 그는 페르메르를 넘어 빛과 어둠의 사상적 의미를 정확히 간파하는 경지를 보여줍니다. 페르메르가 추구했던 이성의 빛이 주인공에게만은 역광의 그늘과 극한 긴장으로 내몰아 세우는 어둠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 모든 불안과 긴장의 근원이 안이 아닌 밖으로 부터 연유한 것임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10여년전 원작을 마주했을 때 맘대로 울지도 못하게하고 맘대로 감동하도록 허용하지도 않던 그 비극미가 출소 후 작업실의 화집을 정리하며 다시 밀려와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130년 전 그림의 장면이 제가 출소 후에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 것은 왜일까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란 멍에를 안고 귀가해야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은 우리의 시대와 130년 전의 시대가 근본에서 바뀌지 않은 그 무엇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제대로 된 계몽과 혁명을 거쳐 보지고 못했고, 식민잔재를 청산하지도 못했으며, 진정한 해방을 경험해보지도 못했으며, 전쟁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평화의 가치에 대해서도 사색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활기찬 성장과 그에 따르는 배려를 경험하지도 못했습니다. 외양은 선진국과 비슷해졌지만 내면에서 그같은 파란과 역정의 과정이 생략되었을 때 앞으로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는 이 그림 앞에서 자기의 상황과 동일시하는 이가 생겨날 지도 모릅니다.
재판이 끝나기 전이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안기관은 이미 충분히 성공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인간을 안보의 이름으로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또 그 배제와 소외를 사회가 수용하도록 함으로써 사회를 통제하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질은 다른사람에게 옮겨야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질을 옮기 전까지 사람들은 학질을 피하지만 막상 옮은 다음에는 다른사람에게 옮기려 드는 것처럼 무서워서 피하든 귀챦아서 피하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국가보안법의 전파자가 되고 전파되는 것의 방관자가 됩니다. 시민사회 역시 이에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모두진술에서 우리몸의 중심은 아픈곳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출소후 저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픔보다 더 가혹한 것은 소외입니다. 아픔은 그래도 소통되는 상태이며 이미 치유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소외는 아픔이면서도 아픔으로 표현되지도, 인식되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란 점에서 가장 가혹한 고통입니다.
소통
버려진 것이 소통한다는 것은 지극한 정성과 목숨을 건 비약을 통해서야 가능합니다.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들꽃이 소통하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1cm도 안되는 땅에 박혀 움직일 수도 없는 들꽃은 최대한 자기를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들어 벌과 나비를 유혹합니다. 벌과 나비는 그저 제 욕심을 위해 오는 것이지만 날개며 몸통에 꽃가루를 묻혀 날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다른 꽃에 가서 그 꽃가루들이 떨어져 번식이 이루어지고 들꽃은 들판을 뒤덮습니다. 사람은 들꽃보다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지만 소통에서 배제시키는 방식 또한 진화하여 그런 사람이 소통에 성공하기란 때로 들꽃보다도 어렵습니다.
버림받고도 버림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버림이란 구조적 폭력이나 구조적소외를 능히 극복하고 소통에 성공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들꽃처럼 간절한 사람, 어느 누구의 주장도 진정성 없는 것이 없습니다. 진정성 있음을 전제로 그 다음은 소통입니다. 소통은 형식입니다. 속으면서도 통할 수 있는 형식입니다. 예술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현실보다 더 위력적으로 소통되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신파가 통하는 시대가 있고 통하지 않는 시대가 있듯이, 거짓과 위선이 통하고, 진실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있습니다. 소통은 사회제도의 한 부분입니다. 국가보안법은 정상적인 소통을 가로막는 제도로 굳어져 있습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향해, 상대방을 위해, 상대방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역설적으로 나를 향해, 나를 위해, 나 스스로를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상의 가장 보편적인 수단은 언어입니다.
저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삼보일배명상 중에 우연히 저학년으로 보이는 초등학교어린이와 조우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입에 꼬치를 베물어 먹으면서 제 곁에 바짝 다가와서는 제가 일어서기를 기다렸다가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응 국가보안법에 대한 명상을 하고 있단다.” “ 국가보안법이 뭐예요” 당장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당황되었지만 우선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북한 알지?” 라고 말을 시작하려하자 “예 북한 알아요. 북한은 우리의 적이에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저는 갑자기 친구들과 휩쓸려 길거리를 지나가던 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단번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길을 돌렸습니다. "동무라는 말 있쟎아. 친구를 동무라고도 하쟎아. 그런데 그말은 북한에서 많이 쓰는 말이라 그 말을 쓰면 북한편을 드는 것이라고 해서 감옥에 잡아가둘 수도 있는 법이 국가보안법이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영재검사가 제가 쓴 글 중에 '종자','해방구',원쑤'등의 단어에 대해 북한에서 쓰는 말이니 북한을 찬양한 것 아니냐는 신문을 받았던 것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말을 해놓고 그것이 유도된 답을 원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도 안돼요 그런게 어딨어요' 이런 답 말입니다. 그러나 이 어린이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의외의 답을 하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그래요 음... 그럼 그런 말은 쓰지 말아야 겠네" 저는 친구들과 합류하여 사라져가는 그 어린이를 한참동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의 아이일수도 검사님이나 변호사님의 아이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을 적으로만 공부한 이 아이가 통일조국을 어떻게 고민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까지를 고민할 엄두는 나지도 않았습니다. 당장 이 아이가 동무, 인민, 사람중심, 주체 이런말들을 하나씩 지워가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습니다. 북한을 향해, 북한을 위해, 북한을 상상할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말들은 또한 우리의 말들이 아닙니까? 해방이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던 ‘인민’이란 말을 언제부턴가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는 ‘국민’이란 말로 ‘인민’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역사는 인민의 자각을 거쳐 국민이 형성되어 왔음을 증명합니다. 개개인으로서의 민중이 국가에 대한 자각과 동일화과정을 거쳐 국민의식이 형성됩니다. 인민의식이 결여된 국민의식은 전체주의와 독재체제에서 등장하고, 강요된 국민의식에 대한 저항을 통해 인민과 민중으로서 존재를 자각하고 새로운 국민의식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와 법은 상생과 불화의 관계에 있습니다. 자유의 신장을 위해 개인들의 합의에 의해 법이 제정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와 이해에 의해 강요되었을 때 개인은 그에 대한 저항을 통해 소통을 시도하고, 그러한 실천을 통해 주체로서의 개인을 재구성해갑니다. 근대를 연 시민세력이 소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항이었습니다. 너를 향해, 너를 위해, 너를 상상할 수 없는 국가보안법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나를 향해, 나를 위해, 나 스스로를 상상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해 짐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앞서 선행하는 것이 소통의 자유입니다. 개인은 소외와 고립을 넘어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신을 재구성해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소통과 소통을 위한 표현은 개인을 긍정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제입니다. 사상의 시장, 표현의 시장을 통해 소통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통의 주관적의지만으로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건 비약의 과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시장이란 엄혹한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권력이 이 과정에 개입하면 겉보기엔 통제가 이루어 질 수 있으나 사상과 표현은 지하로 숨어들고 시장외적 질서에 의해 주도됩니다. 사상은 상품보다 훨씬 비제도적이기에 지하화하는 것도 훨씬 쉽습니다. 인위적 조정인 폭력과 제도로 소통과 표현이 통제될 수 있을까요? 국가를 독점한 권력이 사상의 시장에 개입한 것이 국가보안법입니다. 오늘날 주사파를 키운 1등공신은 국가보안법인지도 모릅니다. 뉴라이트의 전향한 주사파라는 이동호증인의 사상이 진정으로 주사파를 이기려면 국가보안법폐지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사파의 손발을 묶고 심지어 입에 재갈을 물리고 토론에서 이겼다고 한다면 누가 그 승리를 공평한 승리로 인정하겠습니까. 서로 계급장을 떼고 나와도 자기검열이 엄존하는 사회에서, 토론하다 구속될 각오를 해야하는 주체사상과 비주체사상이 겨룬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러한 토론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상태하에 있지 않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상대를 상상할 바탕인 내가 구성되어 있지 않은데 상대와 소통될 리 만무합니다. 결국 나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실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픈 곳이 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나 스스로의 소외를 고민하면서 관성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관성
중생이라도 오늘 깨달았다면 그는 부처요, 부처라도 오늘 닫혀 있다면 그는 중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소통을 포기한 상태가 관성입니다. 구속이나 통제가 아니라 소통이 필요없다고 합리화하고 스스로 최면을 건 상태가 관성입니다. 그리하여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란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국보법이 이전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일 수 있는 법은 이미 아닙니다. 저처럼 간혹가다 한번씩 잡아들입니다. 이것은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까요? 독일은 70년대 기차표 개찰구를 없앴습니다. 그러나 불시에 검표원이 표검사를 해서 표가 없으면 몇배의 돈을 물립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불시검열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표를 사서 승차합니다. 조삼모사입니다. 정부로서는 인력을 줄이고도 질서와 통제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이지만 복지가 향상된 것은 아닙니다. 타율대신 자기검열이란 형식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국보법도 이젠 막무가내로 사람을 잡아들이진 않지만 불시검열처럼 한둘을 잡아들임으로서 사람들을 자기검열하게 하고 효과적으로 국가보안법의 통제를 유지합니다. 사람들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챦아서라고 합리화해둡니다. 국가보안법은 건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애써 모른 채 하고 살고 있습니다. 조삼모사 정책을 받아들임으로서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국가보안법은 자기기만을 초래합니다. 국가보안법이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라 귀챦아서 피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피해자입니다. 그들은 구속된 자보다 더 큰 통제하에 순응하고 있으며 아픔이 있는데도 아픔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도 관성의 체계는 남아 테러방지법 같은, 이름을 달리한 국가보안법의 출현을 허용할지도 모릅니다. 관성에 대한 자각과 소통이 절실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관성은 숨어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드러난 고통뿐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고통까지 성찰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고통의 바다
고통은 소외를 발견할 수 있는 통로이자 계기입니다. 아픈 부분만을 볼 것이 아니라 아픔을 통해 아픔을 소통시키고 있지도 못한 숨어있는 구조전체를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방에서 아픈부위가 아닌 다른 부위에 침을 놓는 것은 이같은 원리의 치료방법일 것입니다. 아픈곳에만 집중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전체구조를 간과할 수 있습니다. 또한 희망대신 절망에 낙관대신 비관에 집착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 이르러 왜 인류의 스승들은 ‘고통’만이 아닌 ‘고통의 바다’를 언급했는지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세상살이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지주의 방법, 장사꾼의 방법, 뱃사람의 방법입니다. 지주는 땅에 울타리를 치고 토지의 이름으로 나아가서는 영토의 이름으로 경계를 확정하는데 골몰합니다. 그는 그 울타리안에서 군림합니다. 비가오지 않으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게합니다. 굿은 비를 내리게 하는데 아무런 물리적 도움이 안되지만 비가 안오는 것이 계기가 되어 불만을 품는 공동체안의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유용합니다. 그는 울타리 밖의 세상에 대해 배타적이며, 강요든, 억지든, 설득이든 울타리안에서만 소통이 되면 그만입니다. 가장 공고한 관성과 제도를 선호합니다.
장사꾼은 울타리를 거부합니다. 자기와 뜻이 맞지 않아도 어떻게든 상대방과 소통하여 물건을 파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심지어 사기를 칠 때조차도 상대방과의 합의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장사꾼은 소통과 교환을 법이나 폭력으로 막지 않는 시장이 있으면 됩니다. 또 그런시장이 막히거나 없을 땐 만들어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뱃사람은 아무런 경계도 없는 곳에서 자연의 거대하고 불안하며 끝없이 변화하는 구조에 민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장사꾼은 소통되는 곳만 찾으면 되지만 뱃사람은 소통되지 않는 숨겨진 구조까지 대비하지 않으면 방심하는 순간 목숨을 잃습니다. 고통의 땅이나 고통의 시장이 아닌 고통의 바다를 응시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통은 이미 소통되고 치유되고 있는 것이지만, 소통조차 되고 있지 않은 숨어있는 고통, 관성의 이름으로 스스로 외면하고 있는 고통의 구조 전체를 통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땅위에선 우공이산과 필사즉생의 신념과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선 내가 상대방의 배를 끌어당기는 만큼 나 또한 끌려가게 됩니다. 작용만이 아니라 반작용까지 생각해야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사수론자는 신념과 힘만 갖추고 있으면 불순분자를 타도하고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정한 울타리 안에서는 맞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작용과 반작용이 모두 존재해온 바다와 같은 역사에선 전혀 맞지 않는 생각이었습니다. 재판중에 진술했듯 헌법3조 영토조항-수복지구론-반국가단체론-국가보안법으로 이어지는 안보이데올로기체계는 1953년 혈맹인 미국이 국부인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에버레디계획을 세우게 했던 근본이유였습니다. 공산군의 위협이 아닌 미국의 위협은 영토조항-국가보안법체계가 존재하는 한 지속적으로 유지됩니다. 5029작전계획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것은 다시 확인 되었습니다. 1952년의 미국의 이승만제거계획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국회의원들을 간첩으로 몰아 헌정질서를 파탄시킨데 대한 응징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보이데올로기체제가 자유와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와 전체주의로 변했을 때 미국은 자유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승만을 제거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부대의 청와대 기습사건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 대응과 이틀 뒤인 1월23일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에 대한 미국의 과도한 반응으로 한미간의 갈등이 깊어졌을 때 미국조차 한국이 작전통제권환수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결국 박정희가 미국특사와의 면담에서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이승만제거계획에 깊이 관여한 당사자로서 얻은 학습효과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 맘먹으면 얼마든지 유엔사를 통해 대통령제거계획에 돌입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이 독재정권을 인정해주었으면서도 국가보안법등을 통한 인권침해문제를 지속적으로 문제삼을 것이란 점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차원에서는 그토록 서슬퍼런 안보이데올로기체계가 국제차원에선 얼마나 상반되게 정권과 국가위기를 불러올 위협적 소재인지를 최고권력자들은 오히려 실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은 나무에서 나왔지만 결국 나무를 태운다’는 직지심경의 문구는 국가보안법을 말단으로하는 안보이데올로기체계의 내심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비유일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을 바다와 같이 전체구조에서 놓고 보면 작용뿐아니라 반작용이 얼마나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저는 보수, 우익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인 박정희의 어록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주체사상에서 쓰는 것으로 알려진 용어와 개념이 여과 없이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몇 개의 보기를 듭니다.
“모든 일은 모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루어지고, 그결과 역시 사람에게로 귀결된다. 무슨일이거나 사람의 머리와 사람의 손으로 출발되어 흥하는 것도 망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국가재건최고회의 1961; 박정희대통령선집3:운명을 넘어, 신범식, 지문각, 1969, p102)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다루는 관계입니다. 인간인 피지도자로 하여금 지도자에게 기꺼이 따르게 하는 가장 긴요한 요소는 지도자의 인간성 그것입니다... 솔선수범, 희생의 정신, 그리고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협조할 줄 알아야 하며, 아울러 성품이 고상하고 덕망이 뛰어나고, 언행이 일치하고 국가와 국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충성해야만 합니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지도자의 길, p58)
“민족이란 별것이 아니오, 하나의 커다란 가족...집안...인 것이다...혁명정부와 국민이 흉 허물없는 한 덩어리, 한 몸이 되어서 저마다 맡은 일을 다해 나가는 민족 단결이야말로 혁명과업을 보람있게 이룩하는데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p77-78)
“이렇다할만한 힘이 없는 우리민족에게는 무엇보다도 우리끼리 우리자신의 힘과 열성을 합해서 (자력)갱생의 길을 향하여 다 같은 뜻으로 뭉쳐야 한다.”
(혁명과업완수를 위한 국민의 길, p82)
위 글들은 1969년 지문각에서 출간된 박정희대통령선집3에 나온 박정희 대통령의 어록입니다. 가장 철저히 북한을 이기려고 한 지도자가 사용한 단어들만 보면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혐의를 받기 충분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말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법위에 선 절대권력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자유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이 전체주의와 독재의 미소에 유혹되어 형평을 잃고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국가보안법은 북을 상대로 한 법이지만 북을 위협하기는커녕 북을 더욱 기세등등하게 했고 정작 수많은 무고한 국민과 인재들만을 처형하거나 구속시키고 소외시켰습니다. 피해자가 북한이 아니라 언제나 남한의 국민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안보이데올로기체계의 하위구조인 지뢰가 북한의 인민군이나 간첩에게 피해를 주는 대신 남한의 서민들만을 피해자로 만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국가안보의 암적존재라고 칭하는 주사파를 키운 것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역설을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는 감옥에 있는 구속자들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사수하고 강화하며 구속자들을 감옥에 보낸 가해자, 집행자들임을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의 바다에선 작용과 반작용이 함께 적용된다는 사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을 더욱 강력하게 적용하고 유지시킬수록 한국의 자유주의체제는 위기에 빠진다는 역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의 바다에서 예술과 미학의 기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의 봉합이 아닌 통찰을 통해 세계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었던 변방은 곧 중심이 되곤 했습니다. 중세유럽질서의 변방에 있었던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써 토마스아퀴나스의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를 열었으며, 3세기동안 이탈리아어를 유럽문명의 중심언어가 되게 하였습니다. 중세를 지탱해온 방대한 논리체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술로 상상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인도불교의 최변방에 있었던 신라에서 의상과 원효는 신라를 불교사상의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되게 하였고 궁예는 고대에서 중세로 나아갈 길을 열었습니다. 이러한 역전의 단초를 마련한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는 미학적 도상이었습니다. 유교중화의 변방이었던 조선에서 송강 정철과 겸재정선은 율곡이이를 발전시켜 새로운 성리학의 세계를 미학으로 구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단테처럼 한글을 아시아의 중심언어로 하는데까지 이르진 못했지만 조선내부의 중심언어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는 데는 분명 기여한 바가 컸습니다. 이들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가로막을 중심의 질서가 느슨한 변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라시아, 세계 냉전체제의 시발이자 최후의 변방인 한국은 중심보다 더 강한 냉전의 질서가 남아 있어 상상력조차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고통의 바다를 보지 못하게 하는 울타리안의 퇴락한 샤먼의 주술이며 율법입니다. 이러한 주술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사회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샤먼의 주술에 의존하는 순간 바다에 뜬 배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으며 더우기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소통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바다위에선 작용이 반작용이 되고마는 역설을 통찰해야 합니다.
간절함
여의도를 출발하여 삼보일배명상을 하며 서강대교를 건너던 첫날 조각도처럼 날라와서 체온을 깍아내는듯한 강바람을 만나야 했습니다. 한강이 얼마나 험악하고 거친 곳인가를 이전에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은 차를 타고 건넜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 거칠고 험한 것을 알게 된 것은 한강이 변한 것이 아니라 제가 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느려지고 낮춰지니 세상의 숨어있던 구조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그 세찬 북서풍의 와중에도 기적처럼 온화한 바람결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절한 자만이 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간절함은 막막함입니다. 그 막막함 앞에서의 절박함입니다. 답 없는 질문이며 문 없는 출구입니다. 그리하여 시인 문익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역사를 산다는 것은 벽을 문으로 알고 걷어차는 일이다.’
아무도 벽에서 문을 보지 못할 때 문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간절한 사람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역사에 제 몸을 던진 사람만이 작고 여리고 숨죽여 흐르는 숨어있는 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간절하다는 것은 반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지루한 반복과 좌절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안의 결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고통의 바다를 통찰하고 결을 발견하며, 생존할 수 있는 자는, 그리하여 간절한 자입니다.
가래침도 껌자국도 담배꽁초도 조용히 머릴 대고 가까이 하면 다 제나름대로의 결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관성을 벗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눈으로 보니 오물일 뿐입니다. 그것이 곧 차별심입니다. 국보법사수론자도 고요히 다가가 경청하면 그 나름의 결이 있으니 경청할 일입니다. 서로가 담벼락을 마주한 듯 막막할지라도 간절하게 다가가고 또 다가가면 결국 우리는 모두 국가보안법의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성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절함은 드러난 아픔을 치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아픔의 구조까지 통찰하기 위해 아픔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고통의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일입니다. 아픔을 치유할 뿐아니라 아픔자체를 긍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식과 고행은 몸 전체에 고통을 주지만 아픔은 몸을 절박하게 하고 조절하게 하며 제 스스로 미세한 결조차 발견하게 합니다. 예술가를 잠수함의 토끼에 비유한 것은 저돌적인 시대의 선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민감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민감함으로 새로운 결을 만들고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자가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영토
우리가 조금만 민감하다면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안보이데올로기체계의 최상위에 헌법3조 영토조항이 있음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땅은 꿈을 꿉니다. 그 꿈을 통해 겨울이 오기도 전 미리 봄을 챙겨 준비합니다. 가을의 땅은 낙엽에게 이제 그 고단한 생을 내려놓으라고 유혹합니다. 땅은 바람에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뭇잎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라고 명령합니다. 땅은 그렇게 수만년, 수천만년을 쌓고 또 쌓아 스스로 모든 생명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땅은 봄이 오기도 전 언 몸을 풀고, 제몸을 질게하여 생명이 뿌리내릴 바탕이 됩니다. 생명의 무덤이 생명의 원천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땅에 토지란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영토란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토지는 개인의 소유관계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며, 영토는 국가의 지배관계에 의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토지란 땅이 아니라

